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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나쳐버린 풍경들 속에 담긴 이야기와 그 너머의 고요한 울림에 대하여

qwe7535 2024. 11. 27. 11:46

우리가 지나쳐버린 풍경들 속에 담긴 이야기와 그 너머의 고요한 울림에 대하여

살면서 얼마나 많은 풍경을 스쳐 지나왔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을까? 출근길의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주말 오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 혹은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며 흘려보낸 거리의 모습들까지. 우리는 매 순간 무수한 장면 속에 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이 내게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 혹은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곰곰이 되새겨 본 적은 거의 없다. 그저 지나갔을 뿐이다. 

하루는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작은 꽃가게를 발견했다. 간판도 낡고, 진열된 화분도 먼지가 살짝 묻어 있었지만, 꽃들의 색감은 눈부시게 빛났다.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치려 했지만,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꽃집 주인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였다. 그녀는 묵묵히 화분을 정리하며 눈을 들어 나를 반겼다. 짧은 대화 끝에 알게 된 건, 이 가게는 30년이 넘게 같은 자리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꽃가게가 있다는 게 신기해서, 나는 다시 한 번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가게 구석에 놓인 오래된 의자와 벽에 걸린 사진들, 그리고 시간이 만든 작은 흔적들이 갑자기 마음을 울렸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작은 순간들을 우연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그날의 꽃가게가 단순히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고 믿고 싶다. 그곳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너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그냥 흘려보냈니?"라고 묻는 듯했다. 꽃가게에서 나온 후, 나는 그곳을 마음속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껏 지나쳐 온 풍경들, 무심히 스친 사람들, 스쳐가는 순간들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풍경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선명하지 않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혹은 특정한 감정과 함께 떠오를 때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고등학교 때 매일 지나던 좁은 골목길에 놓인 작은 전봇대, 대학 시절 늦은 밤 혼자 걸었던 하늘 아래의 산책로,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매달 갔던 시장 골목의 풍경들. 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숨은 실이다. 당시에는 그저 배경처럼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기억을 떠올리면 빛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주 큰 사건이나 극적인 변화에만 눈을 돌린다. 하지만 진정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그런 큰 일들이 아니다. 한겨울 새벽에 들었던 차가운 공기의 냄새, 친구와 웃으며 지나친 골목길의 낡은 벽화, 혼자만 알고 있는 산책로의 작은 나무.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채워준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래된 다리가 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씩 그 다리 아래를 같이 걸으며 어린 나에게 강물이 흐르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물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은 어린 내게 참으로 평온했다. 세월이 흘러 다리는 낡고 강은 더러워졌지만, 그 기억만은 맑고 깨끗하게 남아 있다. 풍경은 변하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추억과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지나온 풍경에 연연하지 말고 앞만 보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그럼 앞을 보고 걸을 때, 너는 지금 네 앞에 있는 풍경을 온전히 보고 있는가?" 지나온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아마 현재의 풍경도 흘려보낼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는 그저 또 다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삶의 풍경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곧 자신의 삶을 존중하는 일과 같다. 단순히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바라보는 눈,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기억으로 간직하려는 노력. 이런 태도가 우리를 조금 더 충만하게 한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스쳐 지나간 풍경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풍경들은 늘 거기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내가 그 풍경을 느끼지 못한 채로 달려온 시간이 아쉽고 후회스러웠다. 그러나 그 미안함이 나를 지금 더 많은 풍경을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게 만들었다. 

지금 내 앞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나는 그 풍경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 귀를 기울인다. 그 풍경은 나에게 다시금 속삭인다. "나를 기억해줘." 

그렇다. 삶은 결국 지나가는 풍경들의 연속이다. 그중 어떤 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삶의 지침이 되고, 또 어떤 것은 잊혀지지만 은연중에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러니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에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작고 평범해 보일지라도, 그 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한 풍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