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무심히 걷던 길 위에서 문득 멈추어, 흐르는 구름의 움직임을 눈에 담는다.
오늘의 하늘이 어제의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무심히 걷던 길 위에서 문득 멈추어, 흐르는 구름의 움직임을 눈에 담는다. 파란색과 흰색의 대비가 얼마나 맑은지, 얼마나 부드러운지. 어쩌면 오늘 이 하늘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또 하루를 버티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약간의 죄책감마저 느낀다. 사람은 왜 이렇게 바쁘게만 살아야 하는 걸까? 나 자신에게 묻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지만, 질문이 떠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지나쳐버린다. 중요한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모두 지나가버린다. 바쁜 삶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작은 사치가 때로는 삶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걸, 나는 오늘 다시 깨달았다.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내일의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는다.
기억 속 어딘가에 아스라한 추억이 하나 떠오른다. 어린 시절,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날들. 그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너무나 당연했다. 구름의 모양을 보며 동물이나 물건을 떠올리고는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 "저건 코끼리야!" "아니야, 고래 같아!" 같은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어쩌면 그때 우리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순간을 기억하는 것조차 희미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작은 기쁨을 잃어버리는 일일까? 아니면 그것을 잊은 척하며 사는 일일까?
하늘을 본다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정신없이 흘러가던 삶 속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나는 조금 달라졌다. 비슷한 하루의 반복 속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짧은 멈춤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마음 한구석에 아주 작은 평안이 자리 잡았다.
오늘의 하늘이 어제의 나를 위로할 줄은 몰랐다. 어제 나는 고민과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다.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와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다그쳤다. ‘더 잘해야 해. 더 노력해야 해.’ 그런 말들만 되뇌던 어제의 나를 오늘의 하늘은 아무런 말 없이 토닥였다. 꼭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늘은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각기 다르다. 하지만 가끔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위로받았던 하늘을 다른 누군가도 보고 있을까? 나와 같은 이유로 고개를 들었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로 멈춰 서 있었을까?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그저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공유하는 이 세상의 작은 조각, 하늘이 그렇게 연결의 매개체가 된다고 상상하니 조금은 덜 외로운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고민은 남아 있고, 해야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오늘의 하늘을 본 기억은 내일의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하늘을 몰랐던 것처럼, 내일의 나도 오늘보다 더 나은 위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어쩌면 이런 감상도 사치일지 모른다. 하루하루를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하늘은 그저 무심한 배경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들처럼 힘겹게 살아가며 이런 작은 여유를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만약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본 하늘이 내일 또다시 같은 모습을 보여줄지는 모른다. 하늘은 늘 변한다. 비가 오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고, 가끔은 아주 짙은 어둠에 잠기기도 한다. 하지만 변치 않는 건 우리가 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오늘의 하늘은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고, 내일의 하늘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삶이 아무리 버거워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만은 잃지 않기로 한다. 그런 결심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내일의 나는 또 어떤 하늘을 마주하게 될까? 그것은 내일이 가르쳐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