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지나쳐버린 작은 순간들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끔은 지나쳐버린 작은 순간들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다 보면 가끔씩 스쳐 지나간 순간들 중 일부가 불현듯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순간들은 대개 사소해 보이거나, 그저 일상적인 것들로 기억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들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된다. 마치 어릴 적 한 번 들었던 낯선 멜로디가 수십 년 후에도 가슴속 어딘가에서 은은히 울리는 것처럼, 그런 순간들은 나도 모르게 나의 방향을 조금씩 틀어놓는다.
내가 처음으로 이런 깨달음을 얻었던 건 대학교를 졸업하던 시점이었다. 졸업식 날, 나는 캠퍼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내내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에 사로잡혔다. 평소엔 그저 지나치기 바빴던 도서관 앞 벤치, 햇살이 유난히 잘 드는 조용한 잔디밭, 그리고 바쁜 걸음을 멈추고 친구들과 함께 웃었던 좁은 복도. 그 모든 공간이 단순히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떠오른 기억은 대학 2학년 때의 어느 오후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늦잠을 자고 부랴부랴 강의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강의실 근처의 복도 끝에 한 교수가 서 있었다. 그 교수는 나를 멈춰 세우더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사실 그때는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대화 이후에 내가 그 교수가 추천한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고, 그 책이 내 인생의 궤적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점이다. 그 책은 단순히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 이후 나는 그 교수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내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만약 그날 그 복도 끝에서 교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한 명의 교수가 무심코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대답했던, 그런 흔한 일이었다. 이런 사소한 일이 나를 변화시키고 내가 선택한 길을 이끌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와 비슷한 일은 내 일상에서도 계속 반복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당시 나는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며 다소 반복적인 업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동료가 내게 다가와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솔직히 나는 처음엔 망설였다. 지금의 안정된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불확실함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프로젝트는 나를 새로운 배움과 성장의 길로 이끌었다.
그때 그 동료가 내게 그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아마 안전하지만 정체된 궤도 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그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그 동료와의 우정 또한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단순히 커리어의 전환점뿐 아니라 내 삶에 소중한 인간관계를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흔히 지나쳐버리는 이런 작은 순간들은 일종의 씨앗과 같다. 처음에는 그저 땅에 떨어져 있는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며 우리의 삶에 커다란 나무를 자라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씨앗이 떨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심은 대개 더 크고, 더 즉각적인 것들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다가오는 작은 일들은 대개 너무나 평범하거나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그 사소함이야말로 우리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다 보면, 가끔은 내 삶의 순간들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감동, 스치는 대화와 우연한 만남들에 좀 더 감사하고 싶다. 나를 설레게 하거나 흥미롭게 하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들 속에 담긴 가능성을 살펴보고 싶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거대한 계획과 목표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목표들 사이사이의 빈틈을 채우는 작은 순간들의 모음이다. 작은 것들이 쌓이고 쌓여 큰 변화가 만들어진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작은 순간들을 더 많이 알아차리고,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더 깊은 의미를 선물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하루를 마치며 나의 하루 속 작은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어떤 일들이 내일의 나를 바꾸고 있을지, 어떤 기억들이 훗날 내가 소중히 여길 추억이 될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또 다른 전환점의 시작점에 서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설레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