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언제나 뒤돌아보는 순간에만 알아차릴 수 있다는 슬픈 진실
가끔 우리는 행복을 쫓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행복은 막연히 떠올리는 미래의 어딘가에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행복은 언제나 눈앞에서 도망가는 기분을 준다. 마치 흐릿한 안개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찾으려 발걸음을 옮기면, 그 빛은 더 멀어져 가는 것처럼.
어느 늦가을 날, 나는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나뭇잎들이 흩날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기는 제법 차가워졌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은은한 회색빛이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행복한가?’ 이 질문은 나를 몇 초 동안 공허한 침묵 속에 빠뜨렸다. 내 마음은 "그렇다"라고 답하기엔 뭔가 부족했고, "아니다"라고 답하기엔 또 그렇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냈던 여름날의 기억이다. 그 시절 나는 일어나자마자 뛰어나가 동네 친구들과 하루 종일 들판에서 뛰놀았다. 대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하루의 끝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잊은 채로 온몸으로 세상을 느꼈다. 논두렁에서 뛰놀며 맨발로 흙을 밟았던 감촉, 낮에는 강에서 수영하며 들렸던 친구들의 웃음소리, 밤에는 반딧불을 찾아 헤매던 그 설렘. 당시에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분명 행복이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어떤 대단한 성취나 조건이 없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차가운 강물 속,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교감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행복을 발견했다. 그 시절의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그저 현재 속에 자리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방식이 달라진다. 어떤 목표를 이루거나, 안정된 환경을 구축하거나, 남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데 집중하며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이란 우리에게 점점 복잡한 조건과 연관된 단어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행복이란 단어를 놓친 사람처럼 느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정말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운 것일까?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그것은 어쩌면 이미 우리의 주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지 우리가 너무 먼 곳만 바라보느라, 이미 주어진 작은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나는 평소 바쁜 업무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특별히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동네 근처로 소풍을 나갔다. 그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뛰어놀았고, 아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평범하고도 특별하다고 느꼈다. 마음 한구석에 묘한 따스함이 차올랐다. 그런데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단언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그날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며 깨달았다.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이었다는 것을. 그저 그때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행복은 종종 우리가 그 순간에만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 속에서 뒤돌아볼 때 비로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는 데에 이렇게 둔감할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삶의 본질보다는 외부적인 조건에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 돈, 명예와 같은 것들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완전히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애쓰지 않으려 한다. 대신, 오늘의 내 하루가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느껴질 때, 그 순간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이 글을 쓰는 이 시간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언제나 뒤돌아보는 순간에만 알아차릴 수 있는 슬픈 진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면, 앞으로의 순간들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의 작은 틈새마다 숨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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