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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며 느끼는 것들에 대해

가을이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나를 다시 돌아보며 느끼는 것들에 대해

살면서 가을을 자주 놓쳤던 것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이유로, 혹은 그저 피곤하다는 이유로 나 자신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주는 것조차 망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가을이 지나간 후에야 그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가을이 지나가면 남은 것은 겨울, 그쯤 되면 바람은 차갑고 땅은 얼어붙으며 우리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계절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다시 가을을 찾기로 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면 서서히 물든 하늘과 붉은 단풍,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온 고요한 공기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런 순간들이 나를 다시 가을 속으로 끌어들인다. 도심의 한복판에서마저도 가을의 색깔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놀라기도 한다. 그동안 가을이 나를 기다려줬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을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초가을의 따뜻한 햇살 속에서 길을 걷다 보면, 세상은 마치 멈춘 듯 조용해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잠시 멈춰서서 자신만의 시간을 찾을 수 있다. 이 시간을 허락하는 가을의 풍경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평화롭다. 특히 햇살에 비친 나무들의 그림자와 떨어지는 낙엽은 내 마음을 비추는 듯하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낙엽처럼, 삶의 끝자락에서 나만의 흔적을 남기며 조용히 세상을 떠날 날이 오겠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듯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여유와 평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시간, 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내가 좋아했던 옛 추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서 나뭇잎을 주워 모았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바람에 실려 온 낙엽을 주워 담으며 할머니는 늘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이게 바로 세월이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웃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점점 더 크게 와닿는다. 

가을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모든 일이 생각보다 쉽게 지나가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동안 마주한 작은 어려움도 그렇게 흘러간다. 마음속으로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은 나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을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모든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다시 돌아본다. 내가 원하는 것, 해야 할 것, 놓쳤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작은 정리들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다시 한번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살아온 길, 지나쳐 온 사람들, 겪어온 일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지나온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나에게 소중한 시간들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물론, 후회도 있었고, 미련도 남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삶을 만든 것이다. 가을이 지나가면 겨울이 오듯,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남긴 흔적들은 여전히 내게 영향을 미친다. 

가을은 또한 자연을 통해 나에게 교훈을 준다. 나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주고, 그 자리를 비워준다. 때로는 사람들도 그렇게 비워내야 할 때가 있다. 더 이상 붙잡을 필요 없는 것들,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비워내면 그만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을을 지나며 나는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 비워내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채워져야 한다.

올해 가을은 예년보다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느끼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가을을 만끽하면서 나는 비로소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가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 비록 시간이 지나고 가을이 끝나면 다시 겨울이 올 테지만, 그동안 나는 가을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것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